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어린 시절, 음악시간에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춰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부르던 노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은 아니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닷가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곳, 평화의 섬이라 불리우는 제주도.
여행갈 일이 있으면 꼭 전화가 온다. ‘구경하려면 어디로 가야해? 맛집은 어디야? 잠은 어디서 자야 돼??’ 라고 묻는다. 나도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12년.... 강산이 한번 변했다. 그러므로 어딜 구경해야 되는지, 맛집이 어딘지, 잠은 어디서 자야 되는지.... 나도 잘 모른다.
가을의 길목, 아직은 여름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던 9월초...
이젠 나도 잘 모르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명절에도 귀찮다고 잘 내려가지 않았던,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이 계신 곳, 제주도에 평화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다.
해군기지 막으러, 구럼비를 지키러 강정마을 싸움에 아주 소소한 힘을 보태러 갔었다.
강정마을...
제주도에서 석양이 지는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 여름이 되면 항상 수영하러 갔었던 강정천이 흐르는 곳,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다 고개를 돌리면 보였던 범섬을 함께 공유하는 곳, 내 친구가 태어난 곳, 올레코스 중 풍경이 제일로 소문난 7코스가 있는 곳...
수없이 많은 말들로 수식할 수 있는 그 곳, 강정마을에 반갑지 않는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올 곳...’
강정마을 주민들이 싸움을 시작한 지, 벌써 4년 6개월째다.
휴학해서 잠시 제주도에 머물렀던 2002년, 그러니까 벌써 9년 전쯤에 ‘화순’이라는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반대에 부딪혔고, 그 다음엔 ‘위미’에 세워보려고 했고, 또 반대에 부딪혔고, 그래서 결국 ‘강정’이었다. 이번엔 반드시 밀어붙이려고 했는지 그들은 가장 교활한 방법을 썼다.
마을 공동체를 깨뜨렸다.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두 동강을 내버렸다. 형제지간에 제사를 따로 지내며, 개들끼리 싸움을 해도 고소를 하는 지경이 되었다. 강정마을에 가본 사람이면 다들 아는 ‘코사마트 사거리’라는 곳이 있다.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가 있는 중덕 삼거리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신부님들이 평화의 미사를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사거리에는 두 개의 마트가 마주보고 서 있다. 코사마트에는 ‘해군기지 반대’ 노란 깃발이 걸려 있고, 그 맞은편 마트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다. 태극기는 ‘해군기지 찬성’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평화의 섬’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내 고향 제주도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니다. 평화를 깨뜨리며 지키는 평화가 어찌 진짜 평화인가? 그건 가짜 평화다.
그들은 ‘외부세력은 나가라’고 말한다. 고향이 제주도인 나 역시도 그들에게는 외부세력에 불과하다. ‘외부세력이 강정마을 싸움을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외부세력을 내보내려고, 그들 역시 외부세력인 서울기동대를 불러들였나? 어찌 강정마을이 강정마을 주민들만의 것인가?
진짜 외부세력은 평화의 생명, 구럼비를 깨뜨리고 들어오는 해군기지가 아닌가? 건설되면 들어올 미군이며, 항공모함이며, 이지스함이 아닌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그저 ‘팽팽한 긴장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크루즈선도 정박할 수 있는 ‘관광미항’으로 건설할 것이라고 한다. 항공모함 사이에 있는 크루즈선이라... 아름다운 구럼비를 파괴하고 건설한 항구는 참 아름답겠다. 문화재청에서 선사시대 유구가 발견된 강정마을에 대해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청했으나, 해군은 묵살하고 계속해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외치며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망루에 오르며 결사적 싸움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싸움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외로운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전국이 주목하고,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국에서 강정마을로, 세계에서 강정마을로 가고 있다. 평화비행기가 뜨고, 평화버스가 달리고, 평화크루즈가 돛을 올리고 있다. 단지 구럼비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해군기지로 인해 촉발될 동북아의 긴장감을 경계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당장 포크레인을 멈춰라!
우리의 평화는 어울렁 더울렁 함께 살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대로 두는 것이 평화다. 제발 강정마을에 평화를....